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 한마디를 떠올려 보려 해도,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.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뒤, 내 기억은 온통 그 이후의 일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다. 2녀 2남 중 장남이었던 나는, 큰아들로서 해야만 하는 행동과 지켜야만 하는 규율 같은 것을 늘 짊어지고 있었다.
그래도 어렴풋이 더듬어 보면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. "길 조심해, 차 조심하고." "학교는 잘 다녀왔니." "이번 시험은 잘 봤어?"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집이었으니, "차 조심하라"는 그 말은 어머니에게 그저 인사말이 아니었을 것이다.
하지만 나를 가장 크게 움직인 말은, 정작 아무도 소리 내어 하지 않은 말이었다. "아버지 없이 커서 버릇이 없다." 나는 그 말을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. 그래서 늘 바르게, 착하게 살려 했다. 담배도, 야간자율학습을 빼먹는 일도, 당구장 출입도 하지 않았다. 학생으로서 어긋나는 일은 아예 곁에 두지 않았다.
약한 친구를 보면 왠지 내가 지켜 줘야 할 것 같았고, 공부는 치열하다 싶을 만큼 파고들었다. 마음 한구석엔 늘 같은 생각이 있었다.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, 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지.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자랐다.
중·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과외가 금지되던 때였다. 그런데 내 심성을 좋게 본 친한 친구가 같이 과외를 받자고 했고, 나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른 친구들 몰래 면목동과 중곡동을 오가며 수학과 영어를 배웠다. 그 덕에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. 다만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 탓에, 그때부터 오랜 방황이 시작되기도 했다.
방황을 끌어안은 채 들어간 군대는, 뜻밖에도 나를 가장 오래 들여다본 시간이 되었다. 남자에게 군 생활이라는 공백의 시간은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라고들 하는데, 정말 그랬다. 부모님을 떠올렸고, 앞으로 내 삶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갈지 그토록 오래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.
어릴 적부터 마음에 박혀 있던 "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지"라는 말이,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다시 나를 흔들었다.
그 고민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. 여전히 나를 가장 무겁게 누르는 것은 경제적인 무게다. 다만 이제 그 무게를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졌다.
나는 요즘, 내 자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를 생각한다. 어떤 말이 그 아이들에게 정말 힘이 될까. 그리고 언젠가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을 맞았을 때, 내가 어릴 적 어머님의 도움으로 그 시절을 건넜듯이, 나 또한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.
어릴 적 나는 말을 '들으며' 자랐다. 이제는 내가 자식에게 어떤 말을 '건넬지'를 고민한다. 소리 내어 들었던 말과 끝내 듣기 싫었던 말, 그 모든 말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고, 이제 그 말들은 내 입을 통해 다음 세대로 건너가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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